[그 작곡가는 왜 AI 회사에 들어갔을까] 김정선 광고 음악 작곡가

새로운 언어(음악)를 배워 생각을 표현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낼 수 있다면, '작곡의 대중화'를 피할 이유가 없어요.

[그 작곡가는 왜 AI 회사에 들어갔을까] 김정선 광고 음악 작곡가
여기, 인공지능이 곡을 써주는 AI 회사에 들어간 수상한 작곡가들이 있다.

자기 밥그릇이 빼앗길 지도 모르는 적진에서 이들은 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 변절자라며, 동료 창작자에게 놀림을 당하고 있는 건 아닐까? AI 저작권을 인정해 주면, 이들의 운명은 대체 어떻게 되는 걸까? 왠지, 이들 수상한 작곡가들이 답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자기소개해 주세요.

작곡가 김정선입니다. 록이 좋아 밴드 생활을 했고, 대학에선 클래식 작곡을 전공했어요. 사회에 나와서는 광고 음악도 만들었어요.

그동안 포자랩스에서 어떤 일 하셨어요?

미디 샘플 음원을 작곡했어요. AI가 음악을 만드는 데 필요한 학습 데이터인데요. 재즈, 힙합 등 여러 가지 장르의 음악을 생성해 내려면 각 장르의 작법을 이해해야 하거든요. 그걸 알려주는 일을 했어요.

현대카드, 삼성 등 유명 기업 광고 음악을 만드셨어요. 포트폴리오가 화려합니다. 작업량도 엄청나구요. 포자랩스 입사 계기가 궁금해요.

작업물은 화려하지만, 작업 환경은 녹록지 않았어요. 급여도 넉넉 않았고, 주말 출근도 많았거든요. 무엇보다 고객의 수정 요청에 즉각 대응하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7년 정도 했는데, 몸도 마음도 지치더라고요.

최근 들어 광고 업계에서 라이브러리 음악 사용량도 늘었어요. 자연스레 일도 점차 줄더라고요. AI 기술이 발전하면, 내가 할 수 있는 게 더 줄어들 수도 있겠구나 싶었어요.

변화가 필요했어요. 오랫동안 좁은 스튜디오에서 혼자 일했는데, 나와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과 어울려 일해보고 싶었어요. 마침 포자랩스 공고를 발견했어요. 포자랩스는 작곡가, 개발자, 연구원, 마케터, 디자이너가 함께 일한다고 하더라고요. 모두 새로운 도전을 하러 온 걸 테니까, 왠지 기대되더라고요. 그래서 지원했고, 붙었고, 이제 1년 가까이 일하고 있어요.

원래 하던 일은 ‘이름’을 남기는 일이었잖아요. 회사에선 ‘이름’이 남는 음악을 만들지 않는데, 아쉽진 않아요?

광고 음악은 상업 음악이잖아요. 그래서 고객에게 ‘작곡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일했어요. 거기서 제 이름을 찾지 않았어요. 상업 음악에 내 정체성을 넣으면 고객의 요구를 이해하고, 냉정하게 작업하는 게 어려워져요. 내 음악이 선택받지 못할 때 자책도 하게 되고요. ‘이름’을 남기지 않는 음악을 만드는 것은 충분히 훈련되어 있달까요?

그리고 포자랩스가 겸직을 허락해 주니까, 퇴근 후에 조금 더 부지런히 개인 작업으로 이름을 남기는 음악을 하면 되거든요. 그래서인지 회사에서 ‘이름’이 남는 음악을 안 한데도, 큰 아쉬움은 없어요.

동료 작곡가들의 반응도 궁금해요.

사실, 대부분 무덤덤해하는 것 같아요. ‘변절자’라고 놀리거나, 안 좋게 바라보는 친구들도 없어요. 인공지능의 침투는 이제 거스를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되려, “회사에서 열심히 해라”라고 응원해 주는 편이에요. 음악 하는 사람들이 모두 먹고 살기 어려워서, 덮어놓고 서로 응원해 주기도 하거든요.

‘기능적’ 음악에 인공지능 침투가 활발해요. 광고 음악이 대표적인데요. 포자랩스도 삼성생명 광고 음악을 만들었잖아요. 앞으로 광고 음악 작곡가들의 역할은 어떻게 바뀔까요?

자본주의로 점철된 상업 음악을 만든다는 건, 음악의 질도 챙겨야 하지만, 적은 비용으로 높은 효과를 내겠다는 마음가짐도 필요해요. 인공지능으로 비용을 절감하고, 동시에 고품질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광고 업계가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 안 할 이유가 없어요. 아마, 더 많이 쓰게 될 거예요.

따라서, 작곡가는 광고 영상의 느낌과 착 붙는 음악을 만들기 위한 예리한 ‘해석 능력’을 갖춰야 할 거요. 아직 광고의 서사와 영상의 분위기까지 해석해 작곡해 주는 인공지능 서비스는 없거든요. 적절한 ‘해석’은 인간의 영역이고, 앞으로도 그렇지 않을까요?

밴드 활동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보고 싶어요. ‘굿나잇 파트라슈’에서 작곡, 작사, 편곡을 도맡아 하셨어요. 정선 님의 손때가 묻은 음악일 텐데요. 만약 AI 음악 서비스가 정선 님의 음악을 허락 없이 학습했다면, 어떻게 대처하실 건가요?

처음엔 신기할 것 같아요. 음원 데이터를 구하고, 학습시키는 데 돈과 시간이 꽤 들었을 텐데, ‘내 음악을 어찌 찾았지…?’ 싶어 한편으론 영광(?)스러울 것 같기도 하고요.

허락 없이 저작물을 AI 학습에 사용하면, 저작권자는 권리 주장을 해야 한다는 국내/외 여론은 잘 알고 있어요. 그치만 아직 자작곡으로 많은 수익을 내본 적이 없어서, 어떤 행정 절차까지 생각해 보진 않았어요. 이게 제 솔직한 마음이에요.

굿나잇 파트라슈는 21년에 마지막 앨범을 내고, 이후엔 활동이 뜸해요. 다음 앨범 기대해 봐도 좋을까요?

사실, 3년 전에 멤버 한 명이 저희 곁을 떠났어요. 지켜주지 못했다는 생각에 죄책감도 컸고, 마음을 추스르느라 작업에 몰두하기 어려웠어요. 하늘나라에서 기현 오빠가 보고 있을 거라 믿어요. 그러니, 언젠가 꼭 밴드 활동 다시 시작할 거예요.

회사에 거현(베이시스트, 다브다)님 보며 참 부럽고, 대단하다는 생각을 해요. 굿나잇 파트라슈도 곧 새 앨범 소식 들려 드리고 싶어요.

포자랩스의 비전 ‘작곡의 대중화’는 작곡가에게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요.

음악은 ‘언어’라고 생각해요. 음악으로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할 수 있거든요. 작곡이 대중화되면 같은 언어(음악)로 소통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뜻이겠죠. 말이 통하는 친구가 더 생긴다는 거잖아요. 저는 좋아요. ‘작곡’이 작곡가만 가질 수 있는 대단한 능력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런 생각도 해봤어요. 세종대왕님께서 한글을 만드셨잖아요. 어려운 한자를 빌려 농사일을 기록하거나, 억울한 재판을 바로잡는 게 어려워 훈민정음을 창제하셨다고 들었어요. 백성들의 소통을 도운 거죠. 사람들이 새로운 언어(음악)를 배워 생각을 표현하고, 개성을 드러내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낼 수 있다면, 작곡의 대중화를 피할 이유가 없어요.

마지막으로, 포자랩스 인공지능에게 하고픈 말 해주세요. 대신 포자랩스 4행시로요.

포: 포기하지 말고

자: 자신감 있게 하자

랩: 랩실에서 개발되고 있는 포자랩스 인공지능아, 수노와 유디오를 뛰어넘어

스: 스응리하는 그날까지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