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작곡가는 왜 AI 회사에 들어갔을까] 노거현 밴드 다브다 베이시스트

"어떤 방식이든, 근사한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모두 존중받기를 바랍니다"

[그 작곡가는 왜 AI 회사에 들어갔을까] 노거현 밴드 다브다 베이시스트
여기, 인공지능이 곡을 써주는 AI 회사에 들어간 수상한 작곡가들이 있다.

자기 밥그릇이 빼앗길 지도 모르는 적진에서 이들은 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 변절자라며, 동료 창작자에게 놀림을 당하고 있는 건 아닐까? AI 저작권을 인정해 주면, 이들의 운명은 대체 어떻게 되는 걸까? 왠지, 이들 수상한 작곡가들이 답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자기소개 해주세요.

사운드 엔지니어 노거현입니다. 회사 밖에선 밴드 <다브다> 베이시스트로도 활동 중이에요. 때때로 여러 인디 아티스트의 앨범 믹스 & 마스터링 작업도 하고 있어요.

그동안 회사에서 어떤 일 하셨어요?

크게 2가지 업무를 담당했는데요. (1) 인공지능 음원의 품질 개선을 위한 후반 작업과 (2) 개발자, 작곡가, AI 연구원에게 ‘좋은 소리’ 관련 지식 공유 세미나를 여러 차례 열었어요.

원재료가 좋아야 후반 작업할 맛이 날 텐데요. 포자랩스 AI 음악 품질 어때요?

입사 초반엔 인공지능 음원 샘플의 품질이 좋지 않아 후반 작업에서 보완할 게 많았어요. 100% 인공지능 기술만으로 판매 가능한 수준의 음악을 생성한다는 게 그때는 쉽지 않았거든요. 음원 데이터도 많지 않았구요. 지금은 불협, 박자, 음정도 많이 개선됐고, 무엇보다, 작곡 의도에 맞는 샘플 음원이 잘 나와요. 쉽게 말해, 재즈로 생성하면 재즈 음악이, 힙합-트랩으로 생성하면 힙합-트랩 음악이 잘 생성된다는 뜻이에요.

최근, LANDR, 튠코어 등 여러 AI 믹스 & 마스터 서비스가 상용화되고 있어요. 사운드 엔지니어의 미래는 점점 불투명해질까요?

아직 위협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LANDR은 2014년부터 AI 마스터링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10년 업력에 비해 현직 사운드 엔지니어들에게 반향이 크진 않았거든요. 이거 때문에 일 그만뒀다는 사운드 엔지니어를 본 적도 없구요. 어떤 아티스트인지, 어떤 곡인지에 따라 소리의 특징이 제각각 다른데, AI가 일일이 대응할 수 있을지 아직 감이 오진 않습니다.

스튜디오 보야져 사운드 엔지니어, 밴드 다브다의 베이시스트, 2024 한국 대중음악상 최우수 모던록 부문 노미니. 입사 전후로 회사 밖 활약이 대단한데요. 아티스트의 직장생활, 어딘가 생경한 조합입니다. 포자랩스 입사 계기가 궁금한데요.

대단한 ‘활약’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해요.

아무튼, 개인 사업자로, 밴드 뮤지션으로 활동하며 나이 30대 중반이 넘어가니 들쭉날쭉한 수입이 조금 걱정됐어요. 평생 음악가로 살았으니 하는 일, 만나는 사람 모두 ‘우물 안 개구리’는 아닌지 고민도 많았구요.

사랑하는 음악 일을 계속하고 싶었어요. 자연스레 재원을 마련할 방법을 고민했고, 마침 포자랩스 채용 공고를 발견했어요. 인공지능 음원 샘플의 믹스, 마스터링 작업이라는 직무 설명도 흥미로웠고, 무엇보다 여러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과 일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지원한 거죠.

입사한 지 벌써 2년 넘게 지났네요. 사람들은 “밥그릇 빼앗기는 거 아니냐”고 묻지만, 입사 후에 사운드 엔지니어의 쓸모에 대해 고민해본 적은 없었어요. AI 모델이 더 나은 소리를 낼 수 있도록 제가 해야할 일이 태산이거든요.

다브다는 2024년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모던록 부문 노미니입니다. 만약, AI 생성 음악이 같이 후보에 오르고, 최종 수상했다면, 어땠을 것 같아요?

처음 겪는 일이라 당황스러울 것 같아요. 그치만, 음악을 들었는데 ‘와… 음악 좋다…’하고 고개가 끄덕여진다면, 인정할 수밖에 없겠죠. 궁금할 것 같아요. 대체 인공지능이 이런 음악을 어찌 만들었을지 말이에요.

인디 음악 씬은 “창작자, 기획사, 팬 모두AI 사용에 다소 저항적일 거다”는 의견도 있어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글쎄요. 인디 음악, 대중음악 할 것 없이 이미 음악 산업 전반에서 인공지능 기술을 적극 수용하고 있어요. 더군다나, 인디 음악과 대중음악이 서로 유기적으로 영향을 주고받고 있기 때문에, 굳이 인디 음악 업계가 인공지능에 더 저항적일 거라고 생각하지 않고요. 인공지능 목소리를 사용해 보컬 가이드라인을 만들거나, 뮤직비디오, 앨범 커버 제작에 AI 기술을 사용할 수도 있구요.

다브다 멤버들과 AI 작곡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셨어요?

물론이죠. AI로 우리가 할 수 없는 완전히 색다른 곡을 써볼 수 있다면, 밴드의 스펙트럼이 커질 테니 환영이에요. 멤버들마다 조금씩 의견은 다르지만, 무턱대고 AI 사용을 반대하는 멤버는 없어요.

AI 시대를 함께 살아가고 있는 동료 뮤지션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AI는 결국 기술이잖아요. 이걸 사용하던, 사용 안 하던, 우리의 선택입니다. 중요한 건 음악, 음악에서 파생되는 뮤직비디오, 공연, 팬덤과 문화의 흐름입니다. AI는 이 흐름을 막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AI를 사용해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색다른 음악과 콘텐츠를 만드는 아티스트는 자신만의 새로운 작법이 생길 테구요. AI를 사용하지 않고, 기존의 방식을 고수한다면, 그 나름의 가치를 인정받게 될 거예요. 어떤 방식이든, 근사한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모두 존중받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