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작곡가는 왜 AI 회사에 들어갔을까] 권경식 사운드 엔지니어
누구나 작곡할 수 있는 세상이 오면, '좋은 소리'에 대해 분별력이 생길 거예요.
여기, 인공지능이 곡을 써주는 AI 회사에 들어간 수상한 작곡가들이 있다.
자기 밥그릇이 빼앗길 지도 모르는 적진에서 이들은 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 변절자라며, 동료 창작자에게 놀림을 당하고 있는 건 아닐까? AI 저작권을 인정해 주면, 이들의 운명은 대체 어떻게 되는 걸까? 왠지, 이들 수상한 작곡가들이 답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자기소개해 주세요.
사운드 엔지니어 권경식이에요. 음원 제작팀에서 인공지능 생성 음원의 QC(품질 검사)와 인공지능 믹스 & 마스터 패치를 만들고 있어요.
믹스 & 마스터, 어떤 작업인가요?
소리를 만들 때, 단점은 숨기고, 장점을 부각하는 작업인데요. 음악에는 사람 목소리, 드럼, 기타, 베이스, 여러 가지 소리를 녹음해 섞잖아요. 그게 믹스에요. 조화로운 소리로 만들기 위해 특정 악기 소리를 줄여보기도, 공간감을 살려보기도 해요. 사진으로 치면 포토샵 작업 정도로 비유할 수 있겠네요.
기억에 남는 개인 작업이 궁금해요.
최근에 <환승연애> 사운드트랙 믹스 & 마스터 작업을 했는데, 가장 기억에 남고요. 부천 국제 판타지 영화제에 출품한 영화 <더 룸즈> 사운드트랙 작업도 기억이 납니다. 가장 심혈을 기울여 작업했던 건 래퍼 크루셜 스타 '그녀를 사랑하는 것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별개야 (feat. jeebanoff)' 앨범이었고요.
경식 님만의 ‘좋은 소리’ 만드는 방법은요?
숨어있는 트랙이 없도록 작업하는 편이에요. 녹음된 목소리, 악기 연주, 효과음을 하나로 뭉쳐 놓으면 몇몇 소리는 존재감을 잃기도 하는데요. 제각각 자기 색깔이 드러나도록 심혈을 기울여 작업해요. 목적 없는 트랙은 없거든요. 음식에도 각 재료의 맛이 살아있는 요리가 있잖아요. 마찬가지인 셈이죠.
아, TPO(시간, 장소, 상황)에 맞는 소리를 만드는 것도 중요해요.
포자랩스의 비전은 ‘작곡의 대중화’인데요. 누구나 작곡을 할 수 있는 세상이 정말 온다면, 사운드 엔지니어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좋은 소리’에 대해 분별력이 생길 거예요. AI 기술로 음악 생산이 늘어나면, 공급도 늘어나겠죠. 자연스레 사람들은 좋은 소리, 나쁜 소리 모두 들어보게 될 겁니다. 그럼, 분별력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소비자는 선택의 폭이 늘어나고, 시장은 커질 겁니다. 독창적인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라면, 반드시 곡의 퀄리티를 따져 작업할 수밖에 없어요. 인공지능 기술의 발달로, 좋은 소리를 구현하고 싶은 음악가들은 더 늘어날 겁니다.
빌리 아일리시 데뷔 전후로 베드룸 팝이 큰 인기를 끌고 있어요. 저예산 레코딩의 가능성을 보여준 셈인데요. 하지만, 1인 음악가가 고품질 음원 제작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AI 믹스 & 마스터 기술의 발전, 1인 음악가에게 기회일까요?
이미 크몽, 숨고에 믹스, 마스터링 해주겠다는 사람이 많아요. AI 믹스 & 마스터링 서비스가 품질이 보장된다면, 1인 음악가들이 분명 사용할 거에요. 왜냐하면 곡은 만들지만, 믹스 & 마스터링 때문에 음원 발매 못 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동료 음악가들은 뭐라고 하던가요?
농담으로 “너 기술 다 뺏긴다”고 놀리죠. 변절자 프레임을 씌우거나, 진심으로 미워하는 동료는 없어요. 아직 피부에 와닿을 정도로 ‘위협’이라고 느끼지 않아서일 수도 있고요. 아님, 많은 AI 음악 회사가 ‘상생’을 표명하고 있어서 그런 걸 수도 있고요.
가끔 우리 직업의 애환에 대해 사운드 엔지니어 동료들끼리 말할 때가 있어요. 창작의 고통에 대해서는 이미 많이 회자되었지만, 엔지니어의 일은 사람들이 모르거든요. 되려, AI로 작곡의 대중화가 되면, 사람들이 엔지니어의 고충을 더 많이 이해해 주지 않을까 싶어요. 좋은 소리를 만드는 게 쉽지 않은 작업이거든요.
AI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동료 음악가를 위해 하고픈 말이 있다면요.
늘 주변에 “빨리 써봐라. 영감을 얻든, 제작 효율화를 하든, 뭐든 좋다”고 말해요. AI는 분명 삶을 윤택하게 해줘요. 저는 하다못해, 문서 정리, 폴더 정리 체계를 만들고 싶어서, 챗GPT로 파이썬 코드를 만들거든요. 작곡 관련 AI가 아니어도 좋으니, 밥그릇 빼앗길 거란 걱정은 걷어내고, 무엇이든 시도해 봤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