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작곡가는 왜 AI 회사에 들어갔을까] 윤수주 영화 음악 작곡가
작곡의 대중화는 꼭 '과공급'만을 뜻하진 않아요. 시장이 커질 수 있고, 새로운 기회가 만들어질 거에요.
여기, 인공지능이 곡을 써주는 AI 회사에 들어간 수상한 작곡가들이 있다.
자기 밥그릇이 빼앗길 지도 모르는 적진에서 이들은 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 변절자라며, 동료 창작자에게 놀림을 당하고 있는 건 아닐까? AI 저작권을 인정해 주면, 이들의 운명은 대체 어떻게 되는 걸까? 왠지, 이들 수상한 작곡가들이 답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자기소개해 주세요.
작곡가 윤수주입니다. 주중엔 회사에선 작곡하고, 주말엔 찐 리뷰를 검증하러 맛집 탐방을 합니다.
그동안 회사에서 어떤 일 하셨어요?
인공지능 음원 생성 시스템을 활용한 음악 제작, QC(음원의 품질 검사), 그리고 음원 데이터를 만들었어요. 말하자면, 선생님 역할을 한 건데요. 인공지능이 음악을 제대로 만들 수 있도록 가르치는 일이요.
포자랩스 AI 음원 중 듣고, 놀라웠던 음원이 있다면요?
멜로디에 '프레이즈(phrase)' 구분이 명확해서 듣기 좋았던 음원이 있었는데, 아래 올려 놓을게요. 주제가 등장하고, 코드가 진행됨에 따라 적당한 정도로 변주가 되서, 듣기 좋았던 음원이에요.
입사 전엔 영화, 드라마 음악을 만드셨어요. 여고괴담, 천문, 포트폴리오가 화려합니다. 입사 계기가 궁금해요.
크진 않았지만, 인공지능에 대한 호기심이 조금 있었어요.
시네마틱 음악만 하다 보니, 다른 장르 음악도 작곡해 보거나, 작곡하는 걸 옆에서 지켜본다거나, 아무튼 경험해 보고 싶었어요. 포자랩스 채용 공고를 보니 여러 장르 음악을 직간접적으로 만들어볼 수 있겠다 싶었어요.
결정적으로, 채용공고가 굉장히 상세하게 작성됐던 기억이 납니다. 작곡가를 채용하는 경우도 드물지만, 채용하더라도 성의 없이 쓴 채용 공고가 보통이거든요. 왠지 느낌이 좋았어요. 그래서 지원했어요.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 등 여러 영화 음악을 만든 조성우 음악 감독님과 오랫동안 함께 작업 하셨는데요. 흥미로운 건, 조성우 음악 감독님은 엄중한 논리를 띈 철학을 전공하고, 누구보다 서정적인 음악을 만들어요. 이런 서사를 알고 나면 음악 듣는 게 더 재밌어집니다. 반면에, 인공지능 음악은 이런 서사가 전무해요. 인공지능 음악의 부족한 서사는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어려운 질문이네요. 일단, 사용자의 작곡 의도가 담긴 ‘프롬프트’가 일종의 서사가 될 수도 있을 것 같구요. 나중엔, 제각각 다른 캐릭터를 띈 인공지능 음악 생성 서비스를 사용하는 서로 다른 사용자의 의도가 뒤섞여 색다른 음악을 만들어 낸다면, 그게 또 일종의 서사가 될 수도 있을 것 같구요. 인공지능 생성 음악이 사용되는 맥락, 이를테면 장례식에서 사용하거나, 부모님 생일 선물로 드리거나, 하는 ‘상황’이 하나의 서사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극의 맥락까지 파악해 음악을 만들어 주는 AI 서비스는 아직 없어요. 인공지능이 영화, 드라마 음악 작곡가를 대체하려면 아직 멀었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어차피 영화 음악 작곡가들은 편곡해요. 영화는 계속 컷편집을 하니까, 음악도 늘리거나, 줄이거나, 셀 수 없이 편곡해야 하거든요. 그러니까, 인공지능 음악으로 초벌 작곡을 하고, 계속 수정해 나간다고 해도 작곡 효율이 떨어지는 건 아닐 거에요.
다만, 영화 음악가들 중 일부는 인공지능 작곡이 아직 생소해서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것 같아요. 영화 음악 업계가 다소 폐쇄적인 면도 조금 있구요.
포자랩스는 그동안 영화 <롱디>, 드라마, <닥터 로이어> 등 여러 영상 음악을 제작했어요. 수주 님이 일하던 영역에 침투한 셈인데요. 동료 작곡가들의 반응은 어때요?
변절자, 라고 놀리는 사람은 일단 없어요 😄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 없었어요. 되려, 대부분 신기해하는 것 같구요. 아마, 인공지능 음악이 필드에서 실제 사용되는 사례가 대단히 많지는 않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하구요.
근데, 영상 음악을 하다 보면 기계적이고, 소모적인 작곡을 해야 할 경우가 있는데. 이걸 인공지능으로 대처할 수 있다면, 작업 효율이 늘어날 거라고 보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아요. 제가 기대하는 바이기도 해요.
마지막으로, AI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동료 음악가들에게 하고픈 말을 해주세요.
작곡의 대중화가 꼭 작곡가(+작곡 서비스)의 과공급만을 뜻하진 않을 거예요. 음악 시장이 커질 수도 있구요. 웹툰에 음악을 깐다거나, 오디오북 시장이 커진다거나, 음악이 필요한 새로운 시장이 생길 수도 있죠. 인공지능을 활용해 작곡 효율을 높이거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면, 새로운 시장에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 수 있는 작곡가가 될 수 있지는 않을런지, 라고 생각해 봅니다.